사이죠 히데키(西城秀樹), 63세로 사망


사이죠 히데키(西城秀樹), 63세로 사망



 ‘YOUNG MAN(YMCA)’, ‘情熱の嵐(정열의 폭풍우)’ 등의 히트곡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사이죠 히데키 씨가 2018년 5월 17일 사망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급성 심부전이라고 합니다. 그의 나이는 갓 환갑을 넘긴 63세였습니다. 2003년과 2011년, 2년에 걸쳐 뇌경색으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을 입은 사이죠 히데키 씨는 그 후에 병마와 싸우며 재활을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그는 郷ひろみ(고 히로미), 野口五郎(노구치 고로)와 함께 「新御三家(신고산케)」로서 70년대 일본을 풍미했습니다.


 48세, 56세에 2번이나 겪은 뇌경색으로 오른쪽 반신 마비나 언어 장애와 같은 후유증이 있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예전 상태로 회복했고 4월에는 콘서트까지 출연하는 등 무대에서의 열정도 마음껏 뽐냈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준수한 외모에 긴머리를 휘날리며 에너지 넘치게 열창하는 모습으로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일본 레코드 대상 가창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고 존경했던 가수 로드 스튜어트 앞에서도 마이크를 흔들며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1979년에 발매한 ‘YOUNG MAN’은 140만장 이상의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곡에서 제일 유명한 안무는 원곡보다 먼저 사이죠 히데키 씨가 버전에서 등장했다고 합니다. 1980년 일본 선발 야구 고교 대회의 입장곡으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각종 광고 삽입곡으로 쓰여 세대를 넘나들며 남녀노소에게 사랑 받는 곡이었습니다.



 음악만을 위해 달려온 63년이었습니다. 재즈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3학년부터 동네 재즈 학교에 다니면서 드럼을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3살 위의 형들과 밴드를 결성해 비틀즈의 곡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악기를 구입하기 위해서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도 하고 岩国(이와쿠니) 지역의 미군 베이스에서 연주도 했습니다.


 広島・山陽高(히로시마・산요 고등학교) 시절에 재즈 카페에서 노래하고 있을 때 스카우트되어 ‘ワイルドな17歳(와일드한 17세)’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데뷔했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신고산케와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그는 46세까지 독신을 고수했으나 2001년 지금의 부인 美紀(미키) 씨를 만나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행복의 나날 속에서 2003년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의 공격에 그는 무너졌습니다. 디너쇼로 방문했던 한국 제주도에서 뇌경색이 발병한 것이지요. 11년에 또 재발하고 다리를 저는 후유증이 남았지만 가족의 사랑 속에 본인 역시 재활에 힘을 쏟았습니다. 애연가였던 그는 담배마저 끊었습니다. 그 이후 60세를 맞이한 2015년에는 환갑 콘서트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사이죠 히데키 씨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죽을 때까지 배우로서 남은 緒形拳(오가타 켄) 씨를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처럼 몸이 쇠할 때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약한 사람이라 자신이 없지만 앞으로 갑옷이 하나 더 생겨 강해질 수 있겠지요?” 라는 그 말처럼 그는 마지막까지 가수 인생을 다했습니다.



하늘에서는 부디 편안하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ご冥福をお祈り致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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