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 侏儒の言葉(난쟁이가 하는 말)

芥川龍之介 侏儒の言葉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 侏儒の言葉(난쟁이가 하는 말)


난쟁이의 말의 서언



난쟁이의 말은 꼭 내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의 사상의 변화를 때때로 엿보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 포기의 풀보다도 한 줄기의 덩굴이 게다가 그 덩굴은 몇 줄기나 덩굴을 늘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쟁이의 기도



나는 이 색동옷을 걸치고 이 광대 짓에 바치고 이 태평스러움을 즐기고 있으면 부족함 없는 난쟁이입니다. 부디 저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제발 한 알의 쌀조차 없을 만큼 가난하게 해주시지 마세요. 제발 또 곰발바닥까지가 있으면 만족할 만큼 부유하게도 해주지 마세요.

아무쪼록 뽕을 캐는 여자 농부조차 싫어하도록 해주시지 마세요. 아무쪼록 또한 후궁의 미인까지 사랑하게 끔도 해주지 마세요

부디 사리분별을 못할 정도로 우매하게 해주시지 마세요. 부디 또 기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총명하게도 해주지 마세요.

특히 제발 용감한 영웅으로 해주시지 마세요. 저는 실제로 경우에 따라 오르기 힘든 봉우리의 정상에 다다르고, 넘기 힘든 바다의 파도를 건너, 말하자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꿈을 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있을 때만큼, 왠지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저는 용과 싸우는 것처럼 이 꿈과 싸우는 것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부디 영웅이 되지 않도록, 영웅의 의지를 일으키지 않도록 힘이 없는 저를 보호해 주세요.

저는 이 봄의 술에 취해 이 고급스러운 한시를 암송하고 이 좋은 날을 즐기고 있으면 부족함이 없는 난쟁이입니다.



인생


만약 수영을 배우지 않는 사람에게 수영하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있으면 몇 명이라도 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만약 달리기를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달리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있으면 역시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태어난 때부터 이러한 바보 같은 명령을 받고 있는 것도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엄마의 태내에 있을 때, 인생에 대처하는 길이 배웠을까? 더욱이 태내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어쨌든 큰 경기장과 닮은 인생 속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당연히 수영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만족스럽게 수영할 수 있는 도리가 없다. 동일하게 달리기를 배우지 않은 사람은 대개 뒤쳐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도 상처를 입지 않고 인생의 경기장에 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역시 세상 사람은 말할 지도 모른다. ‘조상의 흔적을 보는 것이 좋다. 거기에 당신들의 본보기가 있어’ 이라고, 그렇지만 백명의 수영하는 사람이나 천명의 달리는 사람을 보았다고 해도 금세 수영에서 상을 받거나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수영하는 사람은 많은 물을 마시고 있다.  또 그 주자는 혼자 남김없이 경기장의 흙투성이가 되어 있다. 한번 보아라, 세계의 명선수조차 대게는 특기인 미소 뒤에 떫은 얼굴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광인의 주최로 만든 올림픽 대회와 닮았다. 우리들은 인생과 싸우면서 인생과 싸우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게임의 어리석음에 분개를 금하지 않는 자는 금방 울타리 밖으로 떠나는 것이 좋다. 자살도 또 확실히 하나의 편법이다. 그러나 인생의 경기장에 버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성냥 한 상자와 닮았다.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바보스럽다. 중요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인생은 빠진 곳이 많은 서적과 닮아 있다.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쨌든 인생을 이루고 있다.



사소한 것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일상의 사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구름의 빛, 대나무의 살랑거림, 참새무리의 목소리, 행인의 얼굴, 온갖 일상의 사지의 안에 이보다 더 이상이 없는 단맛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인생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러나 사지를 사랑하는 것은 사지 때문에 고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원 앞의 오래된 연못에 뛰어드는 개구리는 100년의 향수를 깼을 것이다. 오랜 연못을 뛰어 나온 개구리는 100년의 향수를 주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파초의 일생은 향락의 일생과 함께 누구의 눈이든 고통을 받는 일생이다. 우리들도 미묘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역시 또 미묘하게 고뇌를 해야 한다.

인생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사소함을 고뇌해야 한다. 구름의 빛, 대나무의 살랑거림, 참새의 지저귐, 행인의 얼굴, 온갖 일상의 사지의 안에서 지옥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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