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테라다 토라히코(寺田寅彦) - 전쟁과 기상학(戦争と気象学)

戦争と気象学


寺田虎彦



 위고[각주:1]는 ‘애사[각주:2]’의 한 구절에 워털루 전투[각주:3]를 서술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1815년 6월 17일 밤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유럽의 미래는 변했을 것이다.”. 비가 내려 물러진 땅으로 인해 나폴레옹의 상위 전력을 차지하고 있었던 포병의 활동에 장애가 생겼다. 이 때문에 나폴레옹은 전투 개시를 살짝 연기하기로 했고 그 틈을 노린 블뤼허[각주:4]가 전력에 큰 손실이 생긴 나폴레옹의 군대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고 전해진다. 이 대목은 문학가의 과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사례는 지금까지의 역사 안에서도 흔하지 않다. 위고와 같은 관점에서 내가 서술하자면 1281년[각주:5] 6월 23일부터 7월 1일에 걸쳐 현해탄을 통과한 저기압[각주:6]은 일본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만약 몽골군이 현재와 같은 기상학적 지식이 있었다면 그 공격은 어쩌면 수개월이나 연기되었을지도 모른다.


 러일전쟁 때도 일본군은 러시아의 군대뿐만 아니라 만주의 기후와도 싸워야만 했다. 동쪽 바다의 해전에서 안개로 인해 입은 피해 역시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을 미루어볼 때 기상학과 기후학과 연관된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인지하지 못한다.


 세계 1차 대전 발발 이후, 전쟁을 위해 무수히 많은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상학 지식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일 또한 많아졌다. 독가스 살포시 적절한 바람 방향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가스를 살포했을 때에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는 경우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15년[각주:7] 4월 10일과 5월 12일에 독일군이 사용한 독가스는 바람이 급변했던 탓에 오히려 독일군이 독가스를 맞았다는 기사가 있다. 또 4월 영국의 폐색대[각주:8]가 벨기에 해안의 독일 잠수정 근거지를 습격했던 때에도 아군의 행동을 엄폐하고자 만든 연기 장벽이 정작 중요한 때에 바람이 바뀌어 아주 큰 착오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당시 충분한 기상관측 장비가 구비되어 있고 우수한 기상학자가 장비를 이용해 정확한 날씨 상황을 예측했더라면 전시를 얼마나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예로, 3월 16일 팔레스타인에서 강풍이 불어 모래 먼지를 일으켰고 그 모래 먼지를 틈타 터키의 낙타부대를 궤멸시켰다는 기사도 있다. 그 밖에도 여러 전선에서 기상으로 인해 유/불리가 갈리는 사례도 매우 많다. 더불어 비행 부대의 활동이 기상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독일군과 연합군에 기상학자가 얼마만큼 활동하고 있는지는 기록된 바가 없어 정확한 수를 알지는 못하지만, 독일이라는 나라를 봤을 때 평소에 기상을 살피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반드시 기상 관측 분야에서도 실수 없이 진행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아마 적국의 기상 관측 장비를 얻는 일에도 꽤나 많은 힘을 쏟았을 것이다. 특히 체펠린[각주:9]을 이용해 영국 공습을 하려 하였을 때는 기상 상태를 파악에 무엇보다 신중을 기했을 것이다. 이 공습에서는 영국 측의 기상 관측 파악의 정도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이 정보를 얻기 위한 첩자가 영국에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잡지를 보면 영국의 기상국장 쇼 씨는 군사 관련 일에 필요한 고문역을 하였기 때문에 행정 업무를 기상국으로부터 면제받았다. 순전히 전쟁과 연관된 문제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영국이 기상 관측에 공을 들임에 있어서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래 영국 자신들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이상하지도 않다. 독일에서는 1899년 이후에 고층 기상관측소를 건설했다. 당시 독일 황제였던 빌헬름 2세는 기상관측소의 설립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빌헬름 2세는 비행선을 통한 영국 습격에서 저지른 우를 재차 범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있었고 이 태도는 꽤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독일과 반대로 영국에서 고층 기상 관측 사업이 정부가 아닌 다인스 개인의 손에서 시작해 나중에 정부로 이관된 것은 꽤 후의 일이다. 또 최근 엘샤이어에 있는 부지에 항공부대의 연습장이 건설이 시작됐지만, 건설 전부터 기상학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공학자들이나 군인들 만의 의견으로 토지를 선정하고 겨우 착공하였더니 기상 방면에서 결점이 생겨 공사를 중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약 505만엔 정도의 돈이 낭비되었다.


 최근 또 미국에서는 비행기로 대서양을 넘거나 운송선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항공대를 전장으로 수송하려는 계획이 꽤 진지하게 연구되고 있고 이 연구에서 제일 큰 핵심요소는 대서양의 기상이다. 이것에 관한 더 자세한 사항은 ‘로마자 세계’의 12월호에서 알 수 있다.


 일본군이 시베리아로 출정할 때[각주:10]에도 기상학적 지식은 필수불가결 요소이다. 시베리아의 계절에 따른 기온이나 풍향, 얼마나 맑은 날이 지속되고 얼마나 흐린 날이 지속되는 지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도 지식의 유무에 따른 준비 상태는 뜻밖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정(大正)7년 12월 「이과교육(理科教育)」


역자(譯者) : 소년B

  1. 빅토르 위고(1802~1885). 프랑스 태생. 대표작 ‘레미제라블’. [본문으로]
  2. 哀史(슬픈 역사) [본문으로]
  3. 전투의 결과로 나폴레옹 치하가 종언을 맞게 된다. [본문으로]
  4.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1742~1819). 스웨덴령 로스토크 태생. 프로이센 육군 원수. [본문으로]
  5. 弘安(홍안)4년. 일본 연호. 1278~1297. [본문으로]
  6. 神風(가미카제)의 기원이 되는 바람. [본문으로]
  7. 大正(대정)4년. 일본 연호. 1912~1926. [본문으로]
  8. 적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항구를 막거나 아군의 항구를 지키도록 파견하던 부대. [본문으로]
  9. 독일의 체펠린(1838~1917)이 발명한 경식 비행선. [본문으로]
  10. 러일전쟁(1904~1905), 본수필 발행년도는 1918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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