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국 선진시대 : 제국으로 가는 길


Ⅱ. 중국 선진시대 : 제국으로 가는 길


 신화의 시대에는 중국인의 시조이고 치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중원을 통일한 황제가 있습니다. 또 태평성세의 시대를 이끌고 선양을 강조하고 부족연맹제를 실시한 요, 순 시대가 있습니다. 이 때 선양은 세습이 아닌 왕권을 유덕자에게 양보한다는 의미입니다. 순 임금은 특히 충과 효를 강조했습니다.


 왕조의 시작에는 우가 건국하고 전설상으로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가 있습니다. 우 임금은 순 임금으로부터 선양을 받은 임금입니다. 하지만 하나라의 공인 여부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점복을 기록하고 신권정치, 제정일치를 주장한 은나라 즉, 상나라도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왕만 점복을 해석하게 만들어 왕권을 강화하였고 유일신을 믿지 않고 주지육림이란 사자성어가 이 시대에 기인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주나라입니다. 주왕은 친족, 공신, 지역세력가를 제후로 임명하고 토지, 인민 통치를 위임했습니다. 제후는 다시 경과 대부로 나뉘어져 재분봉 되었습니다. 이 때 경과 대부의 소유성읍을 채읍이라 불렀고 이 제도를 봉건제라 합니다. 제후는 조공을 바쳐야하고 군사를 대줄 의무가 있습니다. 주나라 초기에는 약 130~180개 국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주나라의 신분 질서는 주왕, 제후, 경과 대부, 사, 민, 천민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탄생은 견융의 침입과 동천, 서주의 멸망으로 천자의 권위가 실추되었고 천명에 대한 회의감이 든 주나라의 쇠퇴를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제후국간의 상호 겸병이 허용되던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제, 진, 초, 오, 월나라로 구성된 주왕을 대신해 제후국간 질서를 주도하던 5명의 패국인 춘추오패와 제후국간 정복의 결과 등장한 전국시대 7개 강국인 전국칠웅이 이 때 패권을 잡았습니다. 하극상이라는 단어도 이 때 나왔습니다. 신분제가 동요하던 시기였고 경과 대부의 다툼과 몰락이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이 때 사 계급이 흥기를 이루게 됩니다. 사회 역시 철기와 우경이 도입과 동시에 보급되었고 상공업이 발달하였습니다.


 제자백가가 흥기를 이룬 배경은 전통 질서에 대한 회의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주대의 붕괴 이후와 부국강병을 만들고자 하였던 지배층의 후원, 집단의 학문을 통한 입신출세 욕구를 드러낸 사 계급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때 공자, 맹자, 순자로 이루어진 유가와 상앙, 신불해, 한비자로 이루어진 법가를 대표적인 제자백가의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유가는 개인의 도덕성 회복으로 이상적 인간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였습니다. 맹자는 성선설과 민본을 주장했고 당시 위험한 주장이었던 방벌론도 펼쳤습니다. 순자는 인욕을 긍정하는 성악설과 예를 통한 욕망의 제어인 화성기위를 주장하였고 성왕의 절대권위를 긍정하였습니다. 법가는 인욕을 긍정하였고 법치를 통한 억제가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적 제도, 수전제, 군공수작제, 중농억상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귀족 탄압, 군현제, 관료제, 법치(중형)를 주장하여 군주권 강화를 외쳤고 진나라가 상앙을 등용해 법가 정책에 성공했고 그 결과 천하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제자백가의 특징은 중국철학의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특징으로는 춘추전국의 시대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학문인 정치 철학, 국가와 사회라는 현실문제를 탐구하는 인문주의, 현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강력한 군주상을 요구하고 관료가 되기 위한 수단이었던 전제군주제가 있습니다. 또 서양식의 개인중심의 부재를 나타낸 선공후사, 민본과 위민을 주장하고 현자를 우대하며 내성외왕을 주장했던 사대부의 이익을 옹호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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